수원 화성 역사와 문화 여행

수원 화성의 역사적 유물이 많다 그중에서 융건릉부터 알아보고 여행을 시작하자

사도세자와 정조대왕 부자의 넋을 기리는 융릉·건릉

용주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인 융릉과 건릉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융·건릉은 화성 8경 중에서도 미려함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양지바른 곳에 놓인 두 개의 왕릉을 감싼 기품 있는 솔숲에는 정조에 관한 일화가 전해진다. 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던 정조는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탄식했다. "네가 아무리 미물인 곤충이라지만 이리도 무엄하단 말이냐! 비통하게 사신 것도 마음 아픈데 어찌 너까지 괴롭히느냐"하고 그자리에서 송충이를 이로 깨물어 죽여버렸다.

당황한 시종들은 서둘러 송충이를 모두 없애버렸는데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도 능 주변에선 송충이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융·건릉을 둘러싸고 있는 솔숲과 참나무가 들어선 황톳길은 상쾌한 심호흡이 절로 나오는 향기로운 산책로다.

찾아가는길

 

정조대왕의 효심과 불심이 깃든 용주사

용주사는 조선시대 정조의 효심이 담겨 있는 곳으로 슬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사찰이다. 아버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 화성 땅으로 모셨는데, 그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 바로 '용주사'다.


자나깨나 원통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 뿐이던 정조는 아버지가 그립거나 전날 꿈자리가 사납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능을 찾아 손수 살폈고 그때마다 용주사에 들러 능을 지키고 보호하길 당부했다고 한다. 이토록 지극한 정조의 효심은 지금까지도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린다, 지금의 용주사는 승무제와 템플스테이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승무제는 용주사 경내에서 매년 개최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승무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몸부림을 표현한 민속춤을 말한다.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시인 조지훈의 대표시 <승무>를 보면 애절하고 아름다운 춤사위가 살아 움직이듯 표현되어 있다. 1938년 당시 조지훈이 이곳에서 승무를 본 후 그 느낌을 시로 담았다 전해진다. 용주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한데 새벽 예불, 발우공양, 108배, 참선, 숲길걷기 다도체험 등 수행자의 일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정조의 효심을 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찾아서'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되새기는 용주사만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충·효·예의 고장인 화성의 정신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용주사 약도

 


삼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의 흐름 당성

당성은 사적 제 217호로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위치하고 있다. 당성은 삼국시대에 치열한 경쟁의 장소이다. 이 지역을 차지한 세력들에 의해 명칭의 변화가 있었는데 백제는 당항성, 고구려는 당성, 신라는 당성군으로 변경하였다.

당성을 차지하였던 세력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 고대 문물을 수입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신라의 당성 확보는 내륙의 국가에서 해양국가로 발전하고 해외로 뻗어 가는 기틀을 마련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당과의 교류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 이후 당성을 규모를 확대하여 이 지역의 문화적 교류의 중요성을 가지게 하였으며 고려·조선시대에도 해양방어에 중요 거점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당성 지도

 

애국 열사들의 영혼이 잠든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는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학살현장으로 기억된다. 1919년 4월 15일, 두렁바위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주민들은 3·1 독립만세운동에 이은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얼마안가 마을엔 총성이 울리고 집들은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일본군은 제암리를 완전히 포위하고 15세 이상의 남자들을 모두 교회당으로 모이게 한 뒤, 출입문과 창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무차별한 총격을 가했다.

또한 죽은 시체들을 교회당 밖에 모아 불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 당시 무참히 살해된 주민이 어린아이를 포함해 모두 23명이다. 일본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을 곳곳에 불을 질렀으며, 이웃주민인 고주리까지 쫓아가 주민학살을 자행했다.

이곳은 아마도 일제강점기의 가장 슬프고 가슴아픈 탄압의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약도

 


성모마리아의 품처럼 포근한 남양성모성지


남양에 가면 '로사리오교'라는 자그마한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순교 남양 성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맷돌이 우뚝 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성모마리아 순례성지로 선포된 남양성모성지다. 성지 앞 쪽에 서 있는 구불 구불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소나무가 볼거리의 시작으로, 성지의 양편과 뒤쪽에는 나지막한 동산들이 감싸듯 둘러 쌓여 마치 성모마리아의 품 안에 든 것처럼 아늑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은 로사리오 성모님의 동산이다. 원형으로 펼쳐진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처럼 꾸며져 있는데 대형 십자가상과 성모상, 어른이 팔을 펼쳐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묵주알이 세워져 있다. 숲과 초원, 그리고 흙길이 펼쳐진 이곳은 천주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식처다.

 

남양성모성지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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