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노래연속듣기

나훈아는 1950년 2월 11일부산에서 선원이자 무역상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학창 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쳤다고 하는데, 나훈아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1965년에 형을 따라 서울에 상경하여 서라벌예고에 입학하여 1968년에 졸업하였다.

고교 2학년이 되던 해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와 계약하여 〈천리길〉 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은 크게 히트하여 나훈아는 대중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고 대중가요를 주름잡았다.

포즈 취하고 있는 나훈아 젊은시절 노래연속듣기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의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하였으며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나훈아는 남진과 함께 경쟁하면서 그 시기에 침체된 대중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어 대중가요 활성화를 이끌었다. 1970년대는 나훈아가 주요 히트곡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남진이 발표하는 노래와 동시에 인기를 얻게 되자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합이 펼쳐졌다.

나훈아는 남진과 달리 대부분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연속 선곡하였으며 당시 무대에서 다양한 포즈와 꺾기 창법으로 트로트를 불러서 중년층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듯이 삼성전자의 회장 이건희의 연회에 참석할 것을 초청받았으나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표를 사는 사람들에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전성기를 한창 누비고 있었던 나훈아는 1972년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하던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을 입원하였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나훈아의 팬들은 남진의 팬이 나훈아를 다치게 했다는 루머를 믿고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되었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하여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가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에 이혼하였다.1976년 전역한 뒤 얼마되지 않아 영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나훈아노래모음 연속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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