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마을, 파독 일꾼들의 아늑한 쉼터

 

 

남해 독일마을은 1960년대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에 파견된 독일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조성한 마을이다. 지난 2001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해 현재는 독일의 이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관광 명소로서도 명성을 쌓고 있다.

 

 

1960년대에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정책은 농촌 붕괴현상을 초래했다. 그 결과 막대한 실업과 외화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정부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의 해외송출을 추진했다. 반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게 되었다. 많은 취업의 기회가 보장된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외면하게 되었고, 그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여 명이 지원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3년 계약의 파독광부들에게는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광산 노동의 경험이 없던 초심자였기에 크고 작은 부상과 후유증에 시달렸다.

 

 

 

1960년대에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고, 독일의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부터 조성한 곳이다. 경상남도 남해군은 사업비 약 30억 원을 들여 40여 동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독일교포들에게 분양하고, 도로·상하수도 등의 기반시설을 마련해주었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와 동천리, 봉화리 일대 약 100,000㎡의 부지에 걸쳐 조성되어 있으며 주택들이 모여 있는 독일교포 정착마을은 산과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동천리 문화예술촌 안에 있다. 독일 교포들이 직접 독일에서 건축부재를 수입하여 전통적인 독일 양식 주택을 건립하였는데 2008년 현재 29동의 주택이 완공되었다. 이 주택들은 독일교포들의 주거지로 또는 휴양지로 이용되며, 관광객을 위한 민박으로도 운영된다.


 

 

파란 눈의 남자들을 볼 수 있는데 평생을 함께한 한국인아내의 고향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파독 간호사들의 남편이다.

민박을 하더라도 한집에 1~3개정도만 하는 조용한 마을이다.

술집은 없다.

 



독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전통적인 독일 양식으로 주택을 지어 국내의 자연경치와 함께 어우러지는 이색적인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 바로 앞에는 방조어부림의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물미해안도로가 있고, 파독전시관에서는 독일에 파견 갔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전시돼 있어 그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매년 열리는 이곳의 맥주 축제를 즐기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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