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자신의 결혼 생활 등에 대해 고백하는 육성 테이프가 다음달 6일 영국에서 최초로 방영됩니다. 
비디오는 1992~1993년 다이애나가 살던 켄싱턴 궁에서 그의 개인 연설코치인 피터 스텔른이 촬영한 것인데요. 이 테이프에는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하소연과 24살 때 불태웠던 경호원과의 사랑, 왕실 시댁에 대한 불만 등이 담겨져 있다고합니다.그래서 많이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아무래도 영국왕실의 권위와  품위를생각해서 공개가 안됐으면 하겠죠. 바로 20여년전이 되겠네요.


 


촬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식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왕실의결혼식이었습니다.

1996.8 찰스왕세자와 이혼하고 영국 왕실을 떠나다

1981년 7월 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 앞, 한여름의 무더위도 잊은 사람들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모여 있었고. 그들은 이제 곧 시작될 20세기의 동화를 기다렸습니다. 동화의 히로인은 자락이 7m나 되는 아이보리색 실크 웨딩드레스를 입고 마차에서 수줍게 내려섰다. 참고로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드레스자락은 3미터였습니다.그녀는 젊고 청순하고 아름다웠지요.

군중들은 현실에 나타난 동화 속 주인공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아버지 스펜서백작의 팔짱을 낀 레이디 다이애나는 이제 남편이 될 영국의 왕위계승 서열 1위 찰스왕세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성당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도, 그녀의 결혼식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전 세계 7억의 사람들도 모두 찰스왕세자 부부가 동화의 마지막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삶은 동화가 아니다.

이 결혼식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인 두 사람의 가장 비극적이고 불행한 결혼의 시작이었습니다. 1981년 7월에 시작된 이 영국 왕세자 부부의 우여곡절 많은 결혼 생활은 15년 후 1996년 8월 결국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1년 후 1997년 8월 다이애나 비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결혼 당시 갓 스무 살이었던 다이애나 비와 그녀보다 12살 많은 찰스왕세자는 여러 면에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다. 다이애나는 귀족신분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이제 막 세상에 나와 유치원 보모로 독립적 삶을 시작하려던 순진한 아가씨였고 찰스는 태어날 때부터 제 1 왕위 계승자로 떠받들어지며 공부에도 소질을 보여 케임브리지를 나온 그야말로 노련한 지식인 왕자님이었다.

 


 

다이애나는 자기 발로 뛰는 스포츠와 춤을 좋아했지만 찰스는 말을 타는 폴로와 사냥을 즐겼다. 다이애나는 함께 하는 대화와 유대감을 중시했지만, 찰스는 혼자 하는 사색과 독서를 더 좋아했다. 다이애나는 결혼 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지만, 찰스는 가는 곳 마다 스캔들을 뿌려대는 난봉꾼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이애나와 결혼 당시 그는 오랜 연인이었던 카밀라 파커볼스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결혼은 연애기간부터 삐걱거렸다. 순진하고 미숙했던 레이디 다이애나는 자신이 왕세자비가 된다는 사실에 흥분해 찰스왕세자의 주변과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찰스왕세자에게 결혼은 왕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그는 한 남자로서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지낼 배우자를 찾기보다는 공석인 왕세자비의 자리를 메워줄 적당한 여인을 찾고 있었다.

다이애나 비에 대한 찰스왕세자의 사랑은 자연인 여성에 대해 자연인 남성이 품은 자연스럽고 애틋한 사랑이 아니라 왕세자가 왕세자비에게 가지는 공식적인 사랑이었다. 찰스왕세자가 한 명의 남자로서 가진 사랑은 연애시기에도 결혼 후에도 다이애나 비에게 있지 않았다. 찰스왕세자가 아니라 인간 찰스로서 그가 사랑한 여인은 첫사랑이었지만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카밀라 파커볼스였다


 

카밀라 파커볼스로 인해 결혼 직후부터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 비는 불화했지만, 그들은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들의 갈등을 감추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왕실은 그 구제불능 왕세자가 국민들 앞에서 더 멋지고 신뢰감 있게 보여지도록 끊임없이 언론 플레이를 했고 그 옆에 서서 다이애나 비는 방긋방긋 웃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연기해야 했다. 
개인 연설코치가 촬영한 영상에서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습니다.다음달 6일 채널4가 방영할 다큐멘터리 '다이애나-그녀의 육성' 예고편에 따르면 사랑이 없는 결혼임을 깨달은 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찾아갑니다
특히 찰스 왕세자로 인해 힘들어 했던 다이애나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찾아가 나눴던 대화를 고백하는 장면이 예고편으로 공개돼 화제가 됐고요.

당시 찰스 왕세자는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카밀라와 둘 다 결혼상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륜관계를 지속했었다. 이에 그녀는 여왕 앞에 찾아가 흐느끼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으나 여왕이 "나도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만 답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호원과 몰래한 사랑도 소개했습니다.다이애나비는  어떤 한 남자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코치에게 말하고 있는데. 그녀의 연인은 경호를 책임진 배리 매너키인 것으로 다이애나비의 주변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매너키는 갑자기 왕실 직책에서 쫓겨난 뒤 3개월 후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는데 다이애나는 살해됐다고 생각하며 "생애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했습니다.이 비디오테이프는 경찰이 2001년 전직 궁중 집사의 집을 수색하다 발견했습니다.

2004년 미국 NBC TV가 일부를 방영하기도했는데 다이애나는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보울스 현 왕세자비의 관계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습다.하지만 영국에선 두 아들인 윌리암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방송 반대 의견이 나오는 등 공개 여부가 논란을 낳았습니다.

1992년 그녀는 저명한 왕실전문 작가를 찾아내 자신의 암담했던 결혼생활을 낱낱이 고발하는 책을 쓰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발간 이후 별거를 선언하였다. 별거 후 1994년에는 이혼도 해 주지 않으면서 그녀가 날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왕실과 찰스왕세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국 국영 방송 BBC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서 다이애나 비는 영국 왕실과 찰스왕세자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결과는 자유였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인터뷰 직후 그녀와 찰스왕세자를 불러 들여 이혼을 지시했다. 1996년 8월 다이애나 비는 처녀 적 이름 다이애나 스펜서를 되찾으면서 왕세자비와 왕족의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제2, 제3의 왕위계승권자인 월리엄과해리왕자의 어머니로서 왕실가족으로 대우를 받았으며 웨일즈의 공주(The Princess of Wales)라는 공식 직함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녀는 두 아들의 양육권을 나누어 가졌으며 여전히 켄싱턴궁에서 살 권리와 거액의 위자료, 왕궁내의 사무실을 얻었다

이혼 후 1년간은 다이애나 스펜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1997년 다이애나는 여름휴가를 애인과 함께 보냈다.호텔을 운영하는이집트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장남 도디 파예드였다. 도디 파예드는 이곳에서 다이애나에게 청혼할 예정이었다고 한다.호텔이 제공한 벤츠에 오르자 그들의 연애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던 파파라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를 따라 잡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카메라 세례를 벗어나기 위해 차는 과속했고.여기에서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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