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한국의 前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이자 KBO 국제홍보위원. 역대 두 번째 아시아인 메이저리거이다. 불같은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로 '코리아 특급'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때 다저스의 1선발 에이스까지 올라갔던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을 달성한 투수. 2001년에는 다저스의 개막전 선발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이력을 남긴 역대 최강의 투수. 또한 한국인 야구선수로서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린 타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저 기록들은 이른바 스테로이드 시대에 세운 기록이라 더욱더 빛난다.
2005년에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딸 셋을 두고 있다. 부인은 박리혜 씨로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인 미국 CIA(보통 당황하기 쉽지만 예전에 다큐멘터리에도 나왔다...)를 졸업했다고 한다.

 


1999 시즌에는 성적이 매우 안 좋았다. 4월 13일 애리조나 디백스 원정경기에서 생애 첫 만루홈런을 맞았고, 그 유명한 한만두를 이 해 맞았다. 그해 박찬호는 한만두 포함 4개의 만루홈런을 맞았다. 이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공동 타이기록. 게다가 6월 5일 애너하임 에인절스 전에서 상대 투수이자 팀 벨처가 박찬호에게 욕설을 하자 팔꿈치 가격 뒤 이단옆차기라는 기이한 싸움을 보였고 벤치클리어링 후 퇴장 당했다. 참고로 이 벤치클리어링은 역대 최악의 난투극에 심심치않게 뽑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유는 야구의 암묵적인 룰 문서에도 적혀 있지만, 스파이크화를 신고 있는 야구선수들의 발차기가 금기이기 때문. 발을 머리에라도 잘못 맞으면 그대로 은퇴할 수도 있고, 실제로 자니 쿠에토에게 발길질을 당한 제이슨 라루는 뇌진탕으로 실려갔고, 다시는 선수신분으로는 그라운드로 복귀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시즌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과 같은 은퇴해도 바로 명예의 전당에 들 수 있는 레전드급 투수들 때문에 대체로 빛을 잃기도 했지만, 전성기 때는 리그에서도 1~2선발급 실력을 보유했던 선수이다.

 


 


탈삼진의 경우, 랜디 존슨에 이은 2위를 마킹한 시즌이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LA다저스가 아닌 리그 중위권 수준의 팀에서 활약했을 시,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저스의 1선발은 아니었지만 1선발급 수준이었다고는 주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 어차피 투수의 탈삼진 능력에 부여하는 개개인의 평가는 상당히 다양하고 똑같이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이하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병역 문제

박찬호는 다저스에 입단하기 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 제의를 받았으나 병역 문제로 입단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저스에 입단할 때 유학생 신분으로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 건너가 시즌 중에는 야구를 하고, 시즌이 끝나면 공부를 계속하여 귀국할 때까지 병역 의무를 연기하는 방법을 계획하였다.

이 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병역 특례의 대상이 되었으며, 1999년 시즌이 끝나고 귀국하여 1999년 10월 11일에 육군 32사단에 입소하여 4주간 기본군사훈련 후 11월 6일에 퇴소 병역 문제를 해결하였다.
1박 2일

박찬호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 11일 까지 방영된 한국방송공사의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1박 2일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공주시에서 진행된 '1박 2일-명사와 함께하는 고향여행편에서 3주동안 그곳이 고향인 그를 출연시켰는데, 단순한 게스트로서가 아니라 '1박 2일'의 기존의 포맷을 유지한채 그가 참여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촬영하였는데, 그가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시청자들에게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며 박수를 보내게 하였고, 간혹 의외의 모습으로 멤버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웃음보를 자극하였다. 이 방송을 통해 박찬호의 유머감각을 새로 알게 되었다.

또한 2009년 12월 18일에 경기도 가평에서 진행된 1박 2일 촬영장을 깜짝 방문하기도 하였다.
요약

대한민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였다. 1994년 LA다저스에서 데뷔하여 2005년에 메이저 리그 100승을 달성하였고 2010년에는 124승을 거두어 평생의 라이벌 노모 히데오를 제치고 메이저 리그 동양인 최다승 투수에 등극하였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미국/일본 세 리그에서 모두 선발승을 거두었으며 메이저 리그/마이너리그/일본야구/한국야구에서 뛰면서 통산 156승의 성적을 거두었다.

박찬호의 최전성기는 많은 정상급 타자들이 약물을 복용하여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하던 1997년에서 2001년 사이로 당시 그의 위치는 LA 다저스의 1선발이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슬러브 및 파워커브로 연평균 15승/200이닝/200삼진/3점대 방어율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당대 내셔널리그 우완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으며 메이저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사이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FA 시장에서 투수 부문 1위로 평가받은 그는 2002년 텍사스와 5년 6500만 달러(옵션 포함 7100만 달러) 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기도 하였다.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에이스로서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고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면제를 받았다. 2006년에는 제 1회 WBC에도 참가하여 부동의 에이스로서 1승 3세이브 무실점의 성적을 보이며 4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0년을 끝으로 메이저 리그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한 그는 2011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잠시 뛰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2년에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고 그 해 11월 29일 현역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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